퇴직할 때 목돈을 손에 쥐면 마음이 놓입니다. 그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세금만 놓고 보면 대부분 연금으로 나눠 받는 쪽이 유리하도록 제도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지, 그리고 세금만으로 결정해도 되는지 짚어봅니다.
퇴직소득세는 이미 계산되어 있습니다
퇴직금에는 퇴직소득세가 매겨집니다. 이 세금은 근속연수가 길수록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라, 같은 금액이어도 오래 일한 사람이 세금을 덜 냅니다. 여기까지는 일시금이든 연금이든 동일하게 계산됩니다.
차이는 그다음입니다.
일시금으로 받으면 그 자리에서 전액을 냅니다
퇴직금을 한 번에 받으면 계산된 퇴직소득세를 그 시점에 모두 냅니다. 세금을 떼고 남은 금액이 통장에 들어옵니다. 간단합니다. 대신 아래에서 설명할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연금으로 받으면 세금이 미뤄지고 깎입니다
퇴직금을 IRP(개인형퇴직연금) 계좌로 옮기고 55세 이후 연금 형태로 나눠 받으면 두 가지 효과가 생깁니다.
- 과세 이연. 퇴직 시점에 세금을 떼지 않고, 실제로 연금을 받을 때마다 나눠서 냅니다. 그동안 세금으로 나갈 몫까지 계좌 안에서 운용되므로, 운용 성과가 났다면 그 몫에도 성과가 붙습니다(손실이 나면 반대입니다).
- 세액 감면. 연금으로 받을 때는 원래 낼 퇴직소득세에서 일정 비율을 깎아줍니다. 오래 나눠 받을수록 감면 폭이 커집니다.
| 그 해가 몇 년차인가 | 그 해에 적용되는 감면율 |
|---|---|
| 1~10년차 | 30% 감면 |
| 11~20년차 | 40% 감면 |
| 21년차 이후 | 50% 감면 |
감면율은 전체 금액에 하나가 붙는 게 아니라 연차별로 적용됩니다. 25년에 걸쳐 받으면 1~10년차 70%, 11~20년차 60%, 21~25년차 50%가 각각 적용되어 실효 감면율은 약 38%가 됩니다. 흔히 듣는 감면율이 통째로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21년차 이후 50% 감면은 2026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신설 조항입니다. 감면율은 개정이 잦으니 실제 수령 시점의 기준을 홈택스나 국세청에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홈택스에서는 본인의 근속연수와 퇴직금으로 예상 퇴직소득세를 직접 모의계산할 수 있습니다.
짧게 나눠 받으면 혜택이 줄어듭니다
IRP로 옮겼더라도 몇 년 안에 빠르게 인출하면 감면 폭이 작고, 연금 수령 요건을 벗어나 인출하는 금액에는 감면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일단 IRP에 넣었으니 됐다"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나눠 받을지가 실제 세금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세금만으로 결정하면 안 됩니다
연금 수령이 세금 면에서 유리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함께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당장 목돈이 필요한지
대출 상환처럼 확실히 이자 부담을 줄이는 용도라면 일시금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노후자금을 헐어 사업이나 투자를 시작하는 것은 이 시기에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저는 봅니다. 실패했을 때 회복할 시간이 없습니다.
2. 건강보험료에 영향을 줍니다
흔히 "연금으로 받으면 건강보험료가 올라간다"고 알고 계시는데, 퇴직연금·연금저축에서 받는 사적연금 소득은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이 아닙니다. 보험료에 반영되는 연금소득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50%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 따질 때는 공적연금이 50%가 아니라 전액으로 잡힙니다. 보험료를 매길 때와 자격을 볼 때의 기준이 다릅니다. 자세한 내용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조건에 정리해두었습니다.
오히려 일시금으로 받아 예금이나 투자로 굴리다 이자·배당소득이 커지면 그때는 소득으로 잡힐 수 있습니다. 본인 사례는 국민건강보험공단(1577-1000)에 물어보는 게 정확합니다.
3. 크레바스 기간과 맞물립니다
퇴직연금은 보통 55세부터 받을 수 있어, 국민연금이 나오기 전 공백기를 메우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이 구간에 얼마가 필요한지 먼저 계산하고, 그만큼을 퇴직연금으로 충당하는 식으로 설계하면 국민연금 조기수령으로 평생 연금을 깎는 선택을 피할 수 있습니다.
퇴직 전에 확인해두세요
퇴직금을 받는 방식은 퇴직 절차 중에 결정됩니다. 회사에서 IRP 계좌 정보를 요구하는 시점에 이미 판단이 서 있어야 합니다. 퇴직이 확정되면 곧바로 금융기관과 공단에 문의해 본인 사례의 예상 세액과 건강보험료 영향을 확인하세요. 나중에 되돌리려면 불이익이 따릅니다.
IRP 계좌를 고를 때 확인할 것
퇴직금을 옮길 IRP 계좌는 본인이 금융기관을 선택합니다. 특정 회사를 추천하지는 않지만, 비교할 때 봐야 할 항목은 정해져 있습니다.
- 수수료. 운용관리·자산관리 수수료가 기관마다 다릅니다. 20~30년 유지할 계좌라 작은 차이도 누적되면 커집니다. 퇴직금 이전분에 대해 수수료를 면제하는 곳도 있습니다. 기관별 수수료는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의 수수료 비교공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가입 가능한 상품. 예금만 되는 곳과 펀드·ETF까지 되는 곳이 다릅니다. 원리금보장형만 쓸 계획이면 상관없지만, 나중에 바꾸려면 계좌를 옮겨야 할 수 있습니다.
- 연금 수령 방식. 수령 기간을 얼마나 유연하게 설정할 수 있는지 봐야 합니다. 감면율이 수령 연차에 따라 달라지니 이 설정이 곧 세금입니다.
퇴직 전 확인 순서
- 회사 인사팀에 퇴직연금 제도 유형(DB형/DC형)과 예상 수령액을 확인합니다.
- 홈택스에서 본인 근속연수·퇴직금으로 예상 퇴직소득세를 모의계산합니다.
- 연금으로 받을 경우 몇 년에 걸쳐 나눠 받을지 정하고, 그 기준으로 감면율을 확인합니다.
- 계산기로 크레바스 기간에 필요한 금액을 확인하고, 그만큼을 퇴직연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지 맞춰봅니다.
퇴직연금으로 메울 크레바스 기간이 몇 년인지부터 확인하세요.
크레바스 기간 계산하기